1회차의 기억
구미경 · 1회차 · 이야기
고단하고 치열했던 경제활동 은퇴후 사천으로 이주한 지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다. 이사하느라 분주한데 아래층 주민이 노크나 인기척도 없이 열린 문으로 들어와 손주를 재워놨는데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 그 무례함에 당황했다. 인사차 떡을 갖고 갔지만 “은퇴 부부가 온다고 하더만...” 하며 말끝을 흐려, 친하게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은 살다보니 적중했다. 겨울의 사천은 태어나 평생 살아온 부산보다 많이 싸늘하고 을씨년스러웠고, 연한 회색 속 새로운 도시의 적막감과 막막함이 교차했다. 크거나 많은 재산도 없이 여기서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막연함이 있었나보다. 남편과 단둘이 하주옥 냉면을 먹었고, 남편은 내가 맛나게 먹는 걸 흐믓하게 봤나봤다. 따뜻한 느낌의 전등 아래 코 고는 남편 얼굴을 보며 앞으로 함께 보낼 많은 시간들에 대한 부담감이 마음에 엄습했다. 느리고 자유롭게 나의 노후의 모토대로 살자,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드립으로 마시는 커피는 향기로 먼저 오고 쌉쌀 달콤한 맛에 행복해진다. 건너의 초전공원과 멀리의 논을 보며 내가 사천에서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재로 찾는 인생여정, 새롭게 시재하니 재밌게 잘 살자. 잊고 있던 지난 기억들을 추억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